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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완벽 리뷰 (스토리, 캐릭터, 상징)

by aosj098 2025. 5. 1.

영화 설국열파 포스터 사진
영화 설국열파 포스터 사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단순한 SF 블록버스터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세상이 얼어붙고, 인류가 기차 안에서만 살아남았다는 설정은 언뜻 보기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았을 때,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계급, 질서, 통제, 저항, 타협 등 현실 사회의 여러 모습이 열차라는 좁은 공간 안에 농축되어 있었습니다. 본 리뷰는 이 작품을 ‘스토리 구성’, ‘캐릭터 분석’, ‘상징과 메시지’라는 세 가지 축으로 나누어 분석하고자 합니다.

스토리 구성 – 앞칸으로 가는 여정, 그게 진짜 ‘진보’일까?

이야기는 열차의 가장 뒷부분, 즉 꼬리칸에서 시작됩니다. 빛도 거의 들지 않고, 사람들은 단백질 바를 나눠 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질서라고 불릴 만한 것은 억압과 통제뿐이었습니다.

주인공 커티스는 지도자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는 큰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이 상황이 잘못됐다는 감각 하나만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의 작은 움직임은 곧 집단의 반란으로 확장됩니다.

열차의 앞칸으로 나아갈수록 환경은 달라집니다.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체제를 찬양하고 있었고, 그 위에는 상류층이 고급 초밥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었으며, 또 다른 칸에서는 환락과 마약, 무기력이 섞여 있었습니다. 이 모든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보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을 줍니다.

결국 커티스는 열차의 중심, 엔진칸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열차를 설계하고 유지해 온 윌포드와 마주합니다. 윌포드는 커티스에게 시스템의 일환으로 자리를 넘기겠다고 제안합니다. 그 제안은 달콤했고 동시에 불편했습니다.

이 영화의 여정은 단순한 반란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반드시 진보일 수 있는가,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과연 옳은가. 이 질문을 영화는 마지막까지 관객에게 남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잊히지 않았습니다.

캐릭터 분석 – 영웅이 아닌 사람들, 그래서 더 현실적이었다

커티스는 흔들리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는 스스로를 리더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영화 중반, 그는 자신의 과거를 고백합니다. 생존을 위해 사람을 먹었고, 그 과정에서 아이를 선택하려 한 기억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고백은 설명이나 변명 없이, 조용히 전해졌습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남궁민수는 커티스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는 체제와 권력 구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가 바라본 건 오직 열차 바깥의 가능성이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열차의 운용이 아니라, 문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딸 요나는 대사도 거의 없고, 표현도 절제되어 있었지만, 그녀의 존재는 상징적이었습니다. 세상의 질서에 순응하지도, 완전히 저항하지도 않지만, 그 자체로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메이슨은 이 영화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그녀는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의 전형을 보여주었습니다. 겉으로는 체제를 설명하고 정당화했지만, 그 방식은 위협과 조작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녀의 말투와 논리는 낯설지 않았습니다. 현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권력자의 모습과 겹쳐졌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전형적인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불완전했고, 망설였으며,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캐릭터로 남았습니다.

상징과 메시지 – ‘열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단지 돌고 있을 뿐이다

설국열차는 전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구를 계속해서 순환하는 구조였습니다. 열차는 멈추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반복되고 있는 시스템의 상징이었습니다. 계급 구조 역시 고정되어 있었고, 갈등은 되풀이되고 있었으며, 심지어 반란조차도 시스템의 일부였습니다.

윌포드는 커티스에게 말합니다. 반란은 필요하다고.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때때로 반란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발언은 허구처럼 들리지만, 현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통치 전략과 유사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이 영화는 SF의 영역을 넘어섭니다. 열차라는 공간은 더 이상 가상의 무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현실 사회의 축소판이었고, 관객들은 그 안에서 자신이 어디쯤 서 있는지를 되묻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요나와 한 소년이 열차 밖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그 앞에 한 마리의 흰곰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단순히 동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세계의 증거였습니다. 질서가 붕괴된 후에야 비로소 보이는 가능성. 영화는 그 조용한 희망을 통해, 순환을 끊는 방법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결론 – 우리는 아직 열차 안에 있다

설국열차는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한 가지 결론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 짓기보다는, 여러 개의 질문을 던지고 퇴장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칸에 살고 있는가”, “그 칸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그 열차를 멈출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관객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시스템은 무너졌고, 열차는 멈췄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구조는 여전히 유사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나도 여운을 남깁니다. 다시 보면 또 다르게 읽히고, 볼 때마다 새롭게 보입니다.

처음에는 열차만 보이지만, 그 안의 사람들을 보게 되고, 결국에는 우리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영화 속 열차는 멈췄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질문은 아직 달리고 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누구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끝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