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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 완벽 리뷰 (스토리, 캐릭터, 상징)

by aosj098 2025. 5. 3.

영화 탈주 포스터 사진
영화 탈주 포스터 사진

2024년 개봉한 영화 <탈주>는 단순한 도망 이야기가 아닙니다. 배경은 1980년대, 군부 정권 아래의 한국. 그러나 영화는 시대를 설명하는 대신, 시대를 '살아가는' 두 청년의 시선으로 접근합니다. 주인공은 군대라는 닫힌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두 사람, ‘기영’(이제훈)과 ‘이수’(구교환). 이들은 단지 병영의 억압을 견디지 못한 탈영병이 아닙니다. 그들은 질문을 품었고, 그 질문은 결국 체제를 흔드는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탈주>는 숨 가쁘게 달리지만, 속도가 전부는 아닙니다. 영화는 길 위에서 벌어지는 추격과 생존의 드라마를 통해 인간의 존엄, 우정, 두려움, 그리고 끝내 살아남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천천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끝내 묻습니다. “우리는 도망친 걸까, 아니면 살아남은 걸까?”

스토리 구성 – 도망이 아니라, 버티는 길이었습니다

영화는 훈련소 한가운데서 시작됩니다. 철조망, 구령, 땀 냄새. 그곳엔 말 대신 명령이 있었고, 질문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기영은 오래전부터 이 구조에 균열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규율보다 우정, 체계보다 감정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던 사람이었죠.

어느 날, 사건이 터집니다. 기영은 어떤 결단 앞에 놓이고, 그의 곁엔 이수가 있었습니다. 이수는 기영과는 다릅니다. 그는 그저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전역하길 바라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영은 말합니다. “여기서 나가야겠어.”

둘은 탈영합니다. 군복을 벗지 못한 채, 밤을 틈타 도망칩니다. 도시가 아니라, 들판과 골목과 폐공장, 아무도 없는 버스 안. 그들이 향하는 곳은 정해진 목적지가 아니라, 단지 ‘이곳이 아닌 어딘가’였습니다.

추격은 거셉니다. 군과 경찰, 모두가 그들을 쫓습니다. 그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의심하기도 하고, 감싸 안기도 합니다. 몇 번이고 갈등하고, 돌아서지만, 끝내 함께 걷습니다. 영화는 이들의 도주를 빠른 속도로 밀어붙이기보다, 중간중간 멈춥니다. 낡은 공중전화 앞에서, 무너진 창고 안에서, 멀리 보이는 철길 옆에서. 그들의 표정이, 말 없는 순간들이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결국 도망은 계속되지만, 달리는 이유는 조금씩 달라집니다. 처음엔 공포였고, 그다음은 분노였고, 마지막엔 생존이었습니다. 그 여정은 관객에게도 닿습니다. 단순히 그들이 잡히지 않기를 바라는 감정이 아니라, 그들이 끝까지 ‘사람’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캐릭터 분석 – 도망치지 않기 위해 도망친 사람들

기영은 처음부터 흔들리고 있던 인물입니다. 그의 눈빛은 정면을 보지만, 그 안엔 늘 물음표가 있었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지? 그 질문이 무력으로, 조롱으로, 혹은 침묵으로 돌아올 때, 그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습니다. 그의 탈영은 계획된 혁명이 아니라, 감정이 터진 결과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본질적인 질문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죠.

이수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집니다. 그는 말수가 적고, 복종에 익숙한 인물이었습니다. 처음엔 기영의 탈영을 말립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도 함께 뛰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우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기영을 통해 자신 안의 어떤 억눌림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엔, 함께 싸우기로 선택합니다. 그 선택은 그를 진짜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듭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영화의 핵심입니다. 우정이라는 말로 포장하기엔 더 복잡하고, 더 조용하지만 깊은 감정이 흐릅니다. 적막한 밤에 나누는 대사 몇 줄, 피곤한 얼굴로 나누는 눈빛, 서로의 발에 피가 묻었을 때 주저 없이 신발을 벗는 장면. 그런 디테일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설득력 있게 만듭니다.

조연들 역시 선명합니다. 그들을 추적하는 장교, 지나치게 충성심에 불타는 동기, 무표정한 군 간부들. 모두가 체제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들 각각도 개인의 표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분노했고, 누군가는 그저 지쳐 있었습니다. <탈주>는 선악으로 인물을 가르지 않습니다. 모든 인물에게 사연이 있고,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더 현실적입니다.

상징과 메시지 – 도망은 곧 저항이었고, 살아남는 방식이었습니다

<탈주>가 보여주는 ‘도망’은 단순한 탈영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스템 안에서 침묵하라는 명령에 대한 작은 반항이며, ‘살아 있음’을 증명하려는 몸부림입니다. 기영과 이수는 누군가를 해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스스로를 지키려 했습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관객은 그들의 편에 서게 됩니다.

도망치는 장면마다 공간이 바뀝니다. 폐허, 들판, 버려진 학교, 낡은 무대. 이 공간들은 모두 과거의 잔해 같았습니다. 그 위를 뛰어다니는 이들의 모습은, 낡은 체제를 뛰어넘으려는 몸짓으로 읽힙니다. 실제로 영화는 정치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배경, 대사, 인물의 표정들이 쌓이면서, 결국 큰 함의를 만들어냅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영화가 끝까지 ‘영웅’이나 ‘의인’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영도, 이수도 그냥 젊은이일 뿐입니다. 그들은 역사적 상징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평범함이 오히려 메시지를 강하게 만듭니다.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아무나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게 더 무섭고, 더 희망적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누구는 멈추고, 누구는 계속 달립니다. 그 선택은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그들이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게 이 영화의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결론 – 탈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탈주>는 단순한 탈영 영화가 아닙니다. 군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보다 훨씬 큰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기영’과 ‘이수’에게, 지금도 묻고 있는 겁니다. 당신은 도망치고 있나요? 아니면 살아남고 있나요?

이 영화는 결코 화려하지 않습니다. 큰 전투도 없고, 눈에 띄는 액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조용한 추격 속에서, 무수한 감정들이 부서지듯 흘러나옵니다. 그게 더 아프고, 그래서 더 오래 남습니다.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면, 숨이 막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상하게도, 조금은 자유로워졌습니다. 어쩌면 도망이라는 건, 언젠가는 삶을 위한 시작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탈주>는 그렇게, 조용하지만 단단한 영화였습니다. 잊히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분명히 다시 보고 싶을 겁니다. 언젠가 또, 우리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을 때 말입니다.